가.

동생이 결혼했다.

10월 14일 토요일 오후 1시.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구에서 실로 오랜만에 만난 친척분들과의 즐거운 고스톱 여흥을 빙자하여,

그렇게 당신들 곁에 근30년을 채워왔던 '완전소중' 딸의 빈 자리를 가볍지만 힘겹게 채우고 계시는 중이고,

이 어느새 나이 들어버린 한심한 노총각 오빠는 서울집으로 돌아와 문득 찾아와버린 외로움을

어찌할 바 몰라 심하게 뒤척이고 있는 중이다.

어디 사과라도 있으면 사과 깍다가 잠이라도 들련만, 냉장고는 텅비어있다. 젠장.

나.

생각해보면 나란 인간은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대책없을 정도로 늦어터졌다.

최신 개봉예정 영화 리스트는 아주 첨예한 감각으로 줄줄 꽤면서도

온라인서점에 입고된 인문서적들을 쭉 훑으며 어떤 책을 구입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행복해하면서도

당장 하고싶어져버린 일 - 예를 들어 카메라나, 프라모델 등등 - 은 밤을 새서라도 완결을 지으면서도

어느새 늦어버린,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당연시하고 다 즐기고 있는 일은 완전 젬병이 되고 만다.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가 바로, 운전면허증과 결혼이다.

원래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게 없어도 불편함 전혀 없었기에, 그냥, 

반에서 관심은 없지만 그렇게 일부러 안친하게 지내고 싶진 않은 친구 대하듯

그렇게 무심하게 지내왔건만, 어느새 그 친구를 놓쳐버린 것이 왠지 부덕의 소치가 되고 마는 그런 감각.

늦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약이 오른다.

애초부터 재들은 아직 나에겐 필요없어라고 당당할 수 있었는데

계속해서 김새는 풍선마냥 쫄아드는 내 자신이 재수없고 빙정상한다.

하지만 어쩌랴.

동생이 결혼했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다.

나도 이젠 새로운 시작에의 추동을 요구받고, 요구하고 있는 시간대가 결국 오고 만 것이다.

다.

그제 만났던 지아 장커 감독님의 <세계>, 그리고 이어진 감독님과의 대화시간.

나는 바보같은 질문 하나를 던지고 말았다.

"감독님은 지금. 현재의 중국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어쩌면 정말 냉철할 정도의 감각으로 담아내면서도

젊은이들의 결혼에 대한 관심이 있으신 것 같다. 그러니까 답답한 현실 속에서의 어떤 돌파구로서

새롭게 가족을 구성하는 일을 생각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감독님 영화 속 젊은 친구들은 결혼을 자신의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독백마냥 그렇게 읊조리는 것 같다.

감독님께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감독님의 가족관이 궁금합니다"

---> 물론 이렇게 꽤나 멋있는 질문이 아니었다! 위의 질문은 지금 내가 멋있게 각색한 것이다. ㅎㅎ

       한가지 변명을 들이대자면 나는 이 질문을 <세계>에 국한된 질문으로 한 것으로 아니었다.

       <소무>와 <플랫폼>에 감명받았던 나는 이 영화들과 이어지는 <세계> 속의 젊은이들의

       결혼에 대한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런 멍청한 질문을 한 것이다.      

       나는 무척이나 버벅거렸고, 질문하던 중간에 그야말로 '아차' 싶은 심정이 되고 말았다.

       더군다나 나의 질문은 어쩔 수 없이 '통역'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지아감독님의 일갈!

그렇게 영화를 보셨다면 제 영화를 잘못 보신 것입니다.

(이런 지적은 정말 가슴아프다. 특히나 만든 감독에게서 받아야 하는 이런 지적의 무서움이라니!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자고로 우문현답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하 이런 배알도 없는 넘! ㅎㅎ)

저는 이 영화 <세계>를 통해서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시작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순간의

여주인공 타오는 새로운 선택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마지막 씬이 생뚱맞게 느껴지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타오와 타이셩은 살아남은 것도 이미 죽어버린 것도 아닙니다.

다만 어떤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계속 끌려가다시피 이어져가는 우리 삶에

어떤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 우리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라는 질문을 통해서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고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꿈꿀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이 영화 <세계>에서 못 다한 이야기는 <스틸 라이프>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틸 라이프>를 보시면 이 맥락에 다가서실 수 있을 것입니다.

---> 지금 술취해서, 내가 드린 질문에 대한 답변내용이 아닌 내용들도 짬뽕이 되어있고,

       그 순간 지아 감독이 나에게 던진 답변 내용과 100% 일치하는 답변도 아닌 그런 내용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10월 23일 금요일밤에 지아감독님이 나에게 던져준 메시지가 바로 이런 내용이었다라고

       나는 지금 비겁하게 자위하고 있는 중이니, 부디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은 툴툴거리시지 말기를. ^^;

라.

내 나이 이미, 아직 31살.

나는 꿈꾸고 싶고, 언제나 새로운, 가슴 뛰는 선택에 직면해, 그 선택에 나를 불사르고 싶다.

운전면허증도 따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지만,

그래서 지금 무지 외롭지만서도

여기서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살아있음을 증명해내고 싶다.

<중경삼림>의 정선생님의 로맨틱한 코멘터리에서처럼

도저히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존재를 무너뜨리고 들어오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을 버텨내기 위해서 나는 지금 다시 새로이 '나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하자. 다시.


낭만하마의 눈으로 골드미스로 토렌스의 택시운전사 끝나는시간 쉬엄 쉬엄 쉬면서 오메가스터디 ★꺼비의 이야기★ 다희네 집 그녀와 함께라면 다다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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